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해서 잠이 안 옵니다 — 여섯 가지로 나뉩니다
낮에도 수시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뛴 것도 놀란 것도 아닌데 심장이 빨라지고,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힌 듯 답답합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지쳐서 눕는데, 이번엔 그 두근거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검사를 받아보면 심장은 정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답답함과 잠 못 드는 밤은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인천 청라 리아한의원 김재홍 대표원장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 상태를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똑같이 "두근거리고 답답해서 못 잔다"이지만,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최소 여섯 가지로 갈리고, 각각 처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왜 두근거림과 불면이 함께 올까
우리 몸에는 활동을 담당하는 교감신경과 휴식을 담당하는 부교감신경이 있습니다. 낮에는 교감신경이 켜지고 밤에는 부교감신경으로 넘어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 전환이 되지 않으면 낮의 상태가 밤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심장은 계속 뛰고 몸은 잘 준비를 하지 못합니다. 즉 두근거림과 불면은 별개의 두 증상이 아니라,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하나의 상태가 낮과 밤에 다른 얼굴로 나타난 것입니다.
문제는 왜 안 꺼지는가입니다. 여기서 갈립니다.
1. 가슴에 열이 가득 차 답답한 경우
가슴 한가운데가 그득하고 답답합니다. 열이 위로 오르고, 이 상태가 만성적으로 이어져 늘 잠을 설칩니다. 뭔가 얹힌 듯 갑갑한데 딱히 소화기 문제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상한론』에서 이런 상태를 허번불득면(虛煩不得眠), 심중오뇌(心中懊憹)로 표현합니다. 답답함이 가슴에 맺혀 잠을 방해하는 상태입니다. 지실치자시탕 계열을 고려합니다.
인고의 어머니상을 떠올려보시면 어떤 유형인지 아실 수 있을 것 입니다. 화를 잘 내지 못하고 참기만 해서 가슴에 맺혀 홧병이 된 상태가 이 경우 입니다.
2. 두근거리고 열이 오르며 화가 나는 경우
가슴이 잘 뛰고 열이 오릅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화가 치밀고, 그 상태로 누우니 잠이 올 리가 없습니다. 얼굴이 붉어지거나 혀끝이 유난히 붉은 경우가 많습니다.
열 자체가 위로 떠서 신경을 계속 자극하는 상태입니다. 황련이 들어간 처방 계열을 고려합니다. 황련해독탕, 황련아교탕, 삼황사심탕 등이 여기 속하며, 열이 어느 부위에 몰려 있는지에 따라 나뉩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기세가 강한편이고 불면이 생긴지 오래된 경우가 많습니다. 걱정거리가 있거나 다음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불면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3. 두근거리고 불안하며 안정이 안 되는 경우
열보다는 불안정이 앞섭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마음이 붕 떠 있고, 가라앉지 않습니다. 예민해져서 작은 자극에도 반응합니다. 일어설 때 어지럽거나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함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운이 아래에서 위로 치받아 오르는 상태로 봅니다. 영계출감탕 계열을 고려합니다.
흔히 예민한 사람들도 여겨지는 경우 입니다. 자극에 쉽게 반응하여 두근거림, 불안, 불면 외에도 다양한 불편한 증상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걱정도 많이하고 특히 건강에 대한 걱정 즉 건강염려증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4. 어떤 일을 겪은 뒤부터 시작된 경우
시작점이 분명합니다. 사고, 상실, 큰 충격 같은 사건 이후로 두렵고 안정이 되지 않습니다. 가슴이 그득하고 잘 놀라며, 밤에 눕기만 하면 그 일이 떠오릅니다.
『상한론』의 흉만번경(胸滿煩驚)에 해당하는 상태입니다. 시호가용골모려탕을 고려합니다.
용골, 모려는 불면증에 많이 사용되는 한약재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두근거림에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찰 후 적절한 상황에 써야 합니다.
5. 지쳐서 오히려 못 자는 경우
앞의 경우들과 반대입니다. 열도 없고 화도 없습니다. 몸은 완전히 소진되었는데 오히려 잠이 오지 않습니다. 누우면 머릿속만 말똥말똥하고, 겨우 잠들어도 얕게 자다 깹니다.
『금궤요략』의 허로허번불득면(虛勞虛煩不得眠)입니다. 과로가 오래 누적된 분들에게 흔합니다. 산조인탕을 고려합니다.
6. 생각이 많아 잠들지 못하는 경우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미 지난 일과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밤새 되짚습니다. 자주 깜빡하고, 식욕이 없거나 소화가 잘 안 되며, 얼굴빛이 창백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려가 지나쳐 심(心)과 비(脾)를 함께 상하게 한 상태로 봅니다. 귀비탕을 고려합니다.
겉모습이 비슷해도 각각의 유형은 다릅니다
지쳐서 못 자는 사람에게 열을 내리는 약을 쓰면 더 처지고, 열이 가득한 사람에게 보하는 약을 쓰면 더 답답해집니다. "두근거리고 답답해서 못 잔다"는 말만 듣고는 처방을 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유형이 있기 때문에 ‘불면증’, ‘두근거림’, ‘답답함’만 보고 한약을 처방하면 큰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게 됩니다.
확인이 필요한 신호
기능적 원인을 논하기 전에 확인할 것들이 있습니다. 부정맥, 갑상선기능항진증, 빈혈, 승모판 탈출증도 두근거림을 일으킵니다.
맥이 불규칙하게 건너뛰거나 순서 없이 뛴다
흉통, 호흡 곤란, 실신이나 아찔함이 동반된다
운동 중이나 직후에 발생한다
최근 체중이 줄고 손이 떨리며 더위를 못 견딘다
진료는 이렇게 진행합니다
먼저 심박변이도(HRV) 검사로 자율신경 상태를 수치로 확인합니다. 교감신경이 밤에도 켜져 있는지, 부교감신경이 약해져 전환이 안 되는지, 두 신경 모두 고갈되었는지에 따라 방향이 갈립니다. 앞의 1~4번과 5~6번을 나누는 데도 참고가 됩니다.
여기에 진맥과 문진, 설진을 더해 여섯 갈래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고 한약을 구성합니다. 침과 두개천골요법으로 목과 어깨, 두개골 주변의 긴장을 낮추는 치료를 병행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데 왜 계속 두근거릴까요? A. 일반 검사는 구조적 이상을 찾는 검사입니다. 자율신경 조절 기능이 흐트러진 상태는 이런 검사로 잘 포착되지 않습니다.
Q. 여섯 가지 중 제 경우를 스스로 알 수 있나요? A. 대략의 방향은 짐작하실 수 있지만, 두세 가지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고 시간이 지나며 양상이 바뀌기도 합니다. 진맥과 설진으로 확인합니다.
Q. 잠만 자게 해주는 방법으로는 안 되나요? A. 잠을 재우는 것과 두근거리는 상태 자체를 다루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낮의 두근거림이 그대로라면 근본적인 상태는 남습니다.
Q.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A. 증상이 시작된 시점과 소모된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초진 상담에서 예상 경과를 안내해 드립니다.